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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문예출판사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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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고지식하지만 정의로운 도련님을 통해
부당한 세상에 맞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다
“정직하게 살면 누가 이용하려고 한대도 겁날 게 없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고지식하지만 정직한 도련님을 통해 삶에서 중요한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주위 사람들이 보면 융통성도 없고 고집불통인 도련님이 답답해 보이겠지만, 소세키는 그런 도련님의 모습에서 근대 일본의 급속한 변화와 함께 차츰 사라져가는 ‘정직함’이나 ‘체면’의 가치를 발견한다. 《도련님》은 지금도 일본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등 출간된 지 백여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이는 세상과 타협하고 두루뭉술하게 살 것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서 ‘정직함’이라는 자신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가는 도련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순수하고 솔직한 것이 손가락질 받는 세상이라면 어쩔 수 없다”
스스로를 막무가내라고 부르는 ‘도련님’은 친구의 이죽거림에 2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허리를 삐기도 하고, 선물 받은 칼을 시험해 본다며 자기 엄지손가락을 뼈가 드러나도록 잘라내기도 한다. 무시당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고, 거짓말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대쪽같은 도련님의 성격은 언제나 세상사에 손해만 보게 한다. 세상과의 인연이라고는 자신을 길러준 늙은 하녀인 기요뿐이다. 성장한 도련님은 시골 중학교의 선생님이 되고, 답답한 시골 마을에서 말을 듣지 않는 학생들과 속을 알 수 없는 선생님과 부딪히며 자신의 ‘자아’를 깨달아간다. 고지식한 도련님을 회유해 자기편에 세우려는 교감의 꼬드김에도 고지식하게 자기 길만 고집하는 도련님은 그래서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련님은 잘못된 일은 끝까지 바로잡아야 한다. 학생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당해도, 교감이 자신을 회유하려 해도 도련님은 정직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정의를 밀어붙인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책을 통해 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정직함이라는 가치를 고집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우리 시대 많은 도련님’의 소중함을 되새겨보려 한 것이 아닐까.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작가. 당대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학자와 작가로서 존경받았고, 백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일본의 노벨문학상 뒤에는 나쓰메 소세키가 있다”라고 칭송받는다. ‘일본의 근대 격동기’인 메이지 시대(1868~1912)와 거의 생애가 겹쳐서, 그의 사상을 곧 ‘메이지 정신’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즉, 메이지 시대는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전통적 가치(윤리,정의,공동체)가 서구의 가치(돈,성공,개인주의)에 무너지며 혼란했는데, 소세키는 영문학자로서 ‘내가 열심일수록 사회가 정의롭지 않아지는 게 아닐까’ 하는 회의와 고민이 깊었고, 결국 그로 인한 지병(위궤양과 신경쇠약)에 평생 시달리다가 49세(1916)에 내출혈로 사망했다.
1867년 2월 9일 도쿄에서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 ‘소세키’라는 필명은 22세(1889)에 친구 마사오카 시키의 한시 문집에 평을 쓰면서 처음 사용했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33세(1900)에 국비유학생으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는데, ‘영문학 하는 일본인으로서 서구 문화를 사랑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신경쇠약이 심해져서 귀국했다. 하지만 귀국 후에도 생계를 위해 영문학을 강의해야 했기에 신경증이 악화되었는데, 다카하마 교시가 ‘기분 전환 삼아 소설을 써보라’ 권유해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를 썼다. 이것이 뜻밖에 큰 호응을 얻자 38세 늦깎이 소설가로 등단하고 《도련님》(1906), 《풀베개》(1906), 《태풍》(1907) 등을 연이어 발표, 40세(1907)에 교직을 떠나 아사히신문사에 소설 쓰는 전속작가로 입사해서 《산시로》(1908), 《그 후》(1909), 《마음》(1914) 등을 썼다.
도련님
깊은 밤 고토 소리 들리는구나
런던탑
작품 해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직한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