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전자책

검색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 (커버이미지)
알라딘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

페이퍼로드

최성락 지음

2019-11-28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부끄럽지만 마주봐야 할 우리의 참된 역사
영국 정론지 <이코노미스트>가 본 개화기 조선의 모습


“조선은 차라리 외국으로부터 현대적 행정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조선 국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이코노미스트> 1909년 10월 30일자 기사

책이 묘사하는 개화기 조선의 모습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읽기에 불편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행정은 부패하고 권력층은 정권 다툼에만 몰두하며 민중은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린 나라.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주변국들의 정세에 휘말려 운명이 결정되고야 말 허약한 나라가 바로 조선의 모습이었다. 개항 이후 조선의 경제는 일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일본은 가망 없는 조선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손해 보는 투자를 한다고도 했다. 심지어 지배층에 착취당하는 조선 민중에게는 일제의 국권 침탈조차 오히려 약이 될 거라는 신랄한 평가마저 내려버린다. 저자가 친일파라서, 혹은 한국에 억한 심정이 있어 이렇게 적은 것은 아니다. 당혹스럽지만, 이것이 당시 서구 사회가 조선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그 자체였다. 책에서 저자가 메인 텍스트로 인용하는 영국의 정론지, <이코노미스트> 지가 개화기 조선에 내린 평가이기도 했다.

비단 조선의 기사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이코노미스트>에는 당시 서구 사회가 조선과 중국, 일본 등 동양권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들은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의 패배를 보며 훗날 동양인이 자기네와 동등한 무기를 입수할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고, 새로이 함대를 건설한 중국의 모습에서 걱정스런 미래가 드디어 가시화되었음을 지적하며 중국이 서양을 무력으로 몰아내는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청일전쟁으로 드러난 중국 군대의 현실과 일본 군대의 역량을 평가하며, 조선을 둘러싼 러시아, 중국, 일본 간 대립의 결과를 여러 방향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양인의 잠재력을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그들은 동양인은 서양인과 다르다는 차별적 심리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다. 동양인은 서구의 우월한 기술을 입수해 휘두를 때만 위협일 뿐, 근본적으로는 열등하다는 제국주의다운 선입견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동양인은 서구의 기술과 문화, 정치를 받아들여 서구화를 이루어야만 비로소 열등함을 벗어던질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보기에 그 가장 큰 성공작이자 모범생은 청과 러시아를 물리치고 조선을 손에 넣은 제국주의의 막내, 일본이었다.

이렇듯 <이코노미스트>를 주 텍스트로 인용하며 개화기 조선의 역사를 그려낸 책,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에는 당시 제국주의 서구권 국가의 왜곡된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부분 잘못된 정보를 편견으로 해석한 결과다. 게다가 조선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는 일제가 거짓으로 배포한 내용이 상당수 들어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왜곡된 시각을 진지하게 분석하는 일 역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진실이야 어떻든 그 시각은 당시 서구권 국가들이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이었으며, 이들의 협조와 무관심 속에 마침내 국권을 뺏기고 만 당시 조선의 역사에서는 이 왜곡된 시각이 미래의 운명을 결정한 중요한 시각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이 빼앗긴 건 근대화 개혁이 아니라 근대화 개혁의 주도권이다

그래도 정작 <이코노미스트>가 보여주는 당시 조선의 모습과 평가를 자세히 살펴보자니, 현실을 파악한다는 기쁨보다는 암울함과 서글픔만이 더욱 더 몰려온다. 변화를 거부하고, 이권과 권력 다툼에만 몰두하는 지배층의 모습, 노력으로 성공할 희망조차 버릴 정도로 민중을 착취하는 중간관리들과, 발전은 고사하고 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기초 인프라, 거기에 우리를 둘러싼 국가들의 야욕과 무관심…. 정말 당시 조선은 답이 안 나올 정도로 무능과 무책임만 가득한, 지배 받아 마땅한 나라였을까? 일제의 지배가 아니었다면 정치와 경제적 발전은 꿈도 꿀 수 없는 후진국이었다는 게 진정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역사적 사실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이 가장 많이 변한 시기는 1960~1990년의 고도성장기도, 1910~1945년의 일제강점기도 아니라 그 이전인 1870년대~1900년대의 30년간이었다며, 한일합방 이전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던 우리 사회의 활발한 변화를 이야기한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지만, “조선이 결국 근대화 개혁에 실패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렸다고 해서, 조선이 변화하지 않고 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평가는 부당하다”. 1870년대 이전의 조선 사람과 1900년대의 조선 사람은 여느 개방 국가의 국민들이 그렇듯 사고방식도 생활도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이었다.

1870년대 한양은 해가 져서 타종이 울리면 통행금지가 시작됐다. 남자들은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대신 장옷을 쓴 여자들이 하인을 데리고 한양 거리를 오가며 마실을 다녔다. 이 모습은 한양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주요한 볼거리였다. 그런데 1900년대 한양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밤거리를 오가는 도시로 변모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수백 년간의 지엄한 유교 교리가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반면 저자는 변하지 않은 것은 따로 있다며, 조선의 부패한 정치, 관료 시스템에 대해 날선 비판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이코노미스트>든 다른 서구의 문헌이든, 조선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평가만은 늘 한결같았다. 고종은 1863년부터 40년 넘게 조선의 왕으로 군림했지만, 그의 치세의 부정적 특징은 천지개벽하는 세상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거의 바뀌지 않았다. 조선은 근대화에 노력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며 변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1870년대의 조선은 분명 전통 사회로서의 조선이었지만 1900년대의 조선은 이미 근대 사회로서의 조선이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상이 태동할 여지도 충분히 잠재했다. 하지만 “조선 지배층의 의식은 이 기간 동안에도 화석처럼 변하”지 않았고, 그와 함께 변혁의 주도권 역시 우리가 아닌 타국의 손에 들어가 버렸다. 국가의 권한은 주변 국가들의 분쟁 끝에 전리품처럼 하나하나 일본의 손에 넘어갔다. 동시에 의식도 생활도 이미 변화해가던 민중들은 권력을 쥔 일제의 잔혹한 통치 앞에 새 시대를 열거나 외세의 폭거에 저항할 의지마저 차츰 상실해갔다. 한일병합 이틀 전 쓰인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이런 현실을 그저 담담히 고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몇 년간 이뤄진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는 원래부터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은자의 나라의 국민에게서 반항할 만한 기질과 여력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 “이제 일본은 명목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대륙의 권력자가 됐다.”
- <이코노미스트> 1910년 8월 27일자 기사

분노를 넘어, 긍정의 역사관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조선의 근대를 우리의 시각에서 배운다. 조선의 근대사도 당연히 한국인의 시각에서 배운다. 그러나 스스로가 정리하고 평가한 역사는 자긍심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완벽하게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일본과 중국의 시각으로 조선 근대사를 보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일본과 청은 조선의 근대사에서 제3자가 아니다. 조선의 패권을 놓고 전쟁까지 벌이기도 했다. 게다가 일본은 개항 초기부터 조선 침략을 목표로 했고, 이를 위해 왜곡된 조선의 이미지를 만들어 전파시키기까지 한 국가였다. 편향성과 사실 여부를 떠나 한, 중, 일 모두 지극히 자기 편의적으로 근대 조선을 묘사할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자인 것이다.

반면 <이코노미스트>가 다루는 건 직접적 이해관계자는 아닌 서구 사회의 평가다. 서구 국가들이 전 세계를 좌우하던 제국주의 시대이니 서구 사회의 평가는 곧 전 세계의 평가라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그것이 일제의 악의적 선전에 의한 결과였더라도 <이코노미스트>가 보는 조선이 바로 대외적으로 비치는 조선의 이미지 그 자체였던 셈이다. 서구 국가들은 바로 그 이미지에 따라 조선 앞에 놓인 현실을 평가했고, 조선이 멸망하는 데 찬성 혹은 묵인을 표했었다. 특히 <이코노미스트>가 발행되는 영국은 당시 시대의 주류이던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국가였다. 영국이 보는 시선은 곧 당시 세계의 주류가 보는 시선이기도 했다. 복잡한 정세가 얽힌 당시 조선의 역사를 보는 데 <이코노미스트>는 반드시 필요한 퍼즐의 한 조각인 셈이다.

“역사를 모르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라고도 한다. “과거를 아는 것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라는 말도 있다. 물론 역사를 배우는 목적에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면도 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우리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인용하며 과거의 아픈 속살을 우리 앞에 과감히 드러낸 중요한 이유이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이를 통한 미래의 길을 이 책을 통해 독자가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공지사항

등록된 공지사항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