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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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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안서 지음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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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참말 경신이처럼 알 수 없는 계집은 없지요. 현부같은 요부(妖婦)고 할까. 영리하고도 어리석은 듯하고 어리석은 듯하고도 음분(淫奔)하고 독이 있는 계집이었든가 봅니다.
사람이란 괴로운 때 같아서는 금시에라도 자살을 할 것 같으나 어름어름 자내노라면 고조(高潮)된 감정이 식어지기 때문에 다시 어떻게 살길을 생각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봉천서 내가 어떻게 지내다가 집에 왔다는 것은 말치 않겠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족한 술을 먹지 아니하고는 지내갈 수가 없었지요. 집에 들어오니 일은 벌써 다될 대로 되었습니다. 여간한 땅이라고 남지 아니한 것이 아니지요마는 고향에 있고 싶은 생각은 조곰도 없을 뿐이라고 근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뒷공론하는 것이 듣기 싫어서 나는 남은 모든 것을 다 팔아버렸습니다.
한국의 시인. 안서(岸曙)는 호. 본명은 김억(金億), 김희권(金熙權). 평안북도 곽산 출신.
1907년 정주군의 오산학교에서 수학, 1913년 일본의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영문과에 입학, 1914년 도쿄 유학생들이 발간하는 ‘학지광(學之光)’에 시 ‘이별’ 등을 발표하여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16년 모교인 오산학교에 교사로 부임, 시인 김소월은 오산학교 때의 제자로, 김억의 지도를 받았다. 1920년대 초반 상징시의 시풍이 문단에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한시의 번역이나 민요 발굴 등에 노력하였다. 1922년 김소월을 처음 문단에 소개, 1923년 시집 ‘해파리의 노래’ 간행, 1924년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하였다. 잡지 ‘폐허’와 ‘창조’의 동인. 평양의 숭실학교 교사, 이 밖에도 에스페란토 보급에 앞장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50년 6·25사변 때 납북되었다. 시집으로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 ‘봄의 노래’(1925), ‘먼동 틀 제’(1947), ‘민요시집’(19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