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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잠 시집

스타북스

프랑시스 잠 지음, 윤동주 100년 포럼 옮김

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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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울시인협회 회장 민윤기 시인 추천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집 윤동주가 곁에 두고 읽었던 시의 향연

프랑시스 잠의 시는 ‘잠든 꽃을 보살피는 꿀벌’처럼 보드랍고 강건하다
‘무엇을 만나든 평등하게 흘러가는 물결처럼’ 살아 내도록 만들어 주는 시들

내면이 알려 주는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찾은 프랑시스 잠


프랑시스 잠은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 중의 한 명으로 윤동주는 프랑시스 잠의 시를 ‘구수해서 좋다’고 표현하였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 부조리에 따른 고뇌를 이겨 내고, 그 삶을 시로써 승화한 프랑시스 잠의 시를 읽다 보면 윤동주가 말한 느낌을 알 듯도 하다.

한편 프랑시스 잠에게도 ‘글을 쓰며 일어나는 교만’이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재능이 신으로부터 부여된 것임을 받아들이고, 오만으로 흐를 수도 있었던 마음을 ‘세상 사람들 목소리의 메아리’로 승화하였다.
그리하여 프랑시스 잠은 고통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치유해 줄 시, 고통을 넘어서 삶을 덤덤히 받아들이도록 하는 시, 오만과 편견을 넘어 겸손과 온화로 이끌어 주는 시, 지상에서 영원한 욕망을 갈구하는 삶을 살지 않도록 해 주는 시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드디어는 인간의 ‘가엾은 마음을 가라앉혀’ 슬프고도 아름다운 삶을 인정하고, ‘무엇을 만나든 평등하게 흘러가는 물결처럼’ 살며 각자의 ‘의무’를 다하도록 만들어 주는 시를 완성하였다.

개성이 추앙받고 개인이 가진 재능을 과시하려는 욕망이 넘쳐나는 지금의 시대에, 순수한 본질이 비웃음을 당하는 이 시대에 프랑시스 잠의 시와 삶이 제대로 주목받길 바라본다.

- 믿음과 사랑을 자연 안에서 온전히 받아들이고 생명체의 기쁨, 슬픔, 고통에 공명하다

프랑시스 잠 역시 시인으로서 ‘문학에 대한 근심’을 갖고 있었고, 한 인간으로서 ‘생의 아이러니’를 알고 겪었다. 그렇지만 프랑시스 잠은 자신이 발 딛고 서야 할 곳이 어딘지를 확인한 다음부터는 다른 어딘가로 떠나기를 꿈꾸지 않았다. 다른 무언가를 좇으며 현재를 지루해하지도 않았다.

그의 믿음과 사랑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반인 자연에 온전히 있었다. 그는 자연 안에 살며 스스로 ‘산과 같음을 생생하게 느’끼며 시를 썼고, 슬픔과 상처까지도 자연 안에서라야 온전히 치유됨을 알았다.
그는 진정으로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는 지혜를, 어떠한 야만에도 사라지지 않을 삶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알고 있던 시인이었다. 잠이 얼마나 선한 마음으로 생명체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통에 공명을 하였는지는 그의 시 전편에 잘 드러나 있다. 프랑시스 잠은 자신의 ‘마음은 끊임없이 사랑을 하도록 되어’ 있으며 ‘지극히 순수한 사랑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라고 스스로의 존재를 느꼈다.

인간의 고귀함과 자연의 숭고함을 아는 시인은 그래서인지 경이로운 삶의 한 부분인 ‘죽음’을 오로지 비탄, 슬픔, 고통스러운 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어둠으로부터 태어나’고 ‘죽음을 서러워하지 않’는 존재로서 생을 살아낼 것을, 자유롭게 살고 ‘자유를 누리며 죽는 자의 영광’이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잠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 공감하며 그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 사람들의 놀림을 받는 ‘나귀’에게서 진정한 시인의 모습을 발견하다

프랑시스 잠은 스스로를 ‘장난꾸러기들의 조롱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고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는 존재로 여겼다. 그리하여 프랑시스 잠의 ‘나귀’는 그의 ‘친구’, ‘가엾고도 사랑스런 짐승들’, 신께서 측은해 하실 만큼 겸손하고 온화한 가난을 비추는 존재, ‘온순’하게 ‘제 할 일을 다’하는 존재, ‘너무 혹사당하여 측은한 생각을 갖게’ 하는 ‘상처투성이’, 일용할 양식마저 없어 굶주리다 ‘어둠 속에 스르르 잠이’ 드는 존재가 된다.

그보다 곱고 따스하고 온순한 존재는 없다고 여기다, 결국 나귀를 너무도 사랑하게 되어 ‘영원한 사랑의 투명함 속에’ ‘겸손하고 온화한 가난을 비추는’ 나귀를 닮기를 바라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나귀를 멍청하다고 놀리지만. 프랑시스 잠에게 나귀는 진정한 ‘시인’이었다.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고 핍박당하는 나귀를 비롯해 작고 약한 존재들에게 공명하며 프랑시스 잠은 우리 삶 속에 슬픔이 함께 스며들어 있음을 느꼈다. 그는 나귀와 같은 삶을 사는 일, ‘하찮은 개미’라고 비유할 만한 삶을 사는 데 담긴 겸손과 행복의 의미를 알았던 것이다. 그 의미 안에는 ‘살갗을 다치는’ 것도 자신을 창조한 신을 ‘모독하는 일’이 되어 버릴 만큼의 인간 존엄성이 담겨 있다.

그 마음들은 <광 속, 울퉁불퉁하고>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마을의…> 등의 시를 통해 드러나 있다. 그리고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를 통해 보이듯이, 잠은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 그 고통이 얼마나 우리를 질기게 따라다니는지 또한 잘 알았다. 그렇지만 잠은 삶의 신비를 체화한 이답게 그 고통들을 기도로써 승화시켰다.
그 깊은 믿음으로써 잠은 자신의 삶이 아름다움과 순수로 채워지기를, 자신의 죽음이 슬픔보다는 온화함과 신비로움으로 전율하는 은총으로 체험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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