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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자음과모음(이룸)

구병모 지음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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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지금,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고독하면서 아름답고, 잔인하면서 슬픈 이야기




삶의 정글 속에서 상하고 부서져 사라져가는 존재의 운명

그 피할 수 없는 이치에 대한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탐구




독특한 상상력과 현실로부터의 과감한 탈주를 시도하며 기존 청소년문학의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았던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 이후 구병모 작가는 청소년문학과 성인 순수문학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어떤 것으로도 왜곡되지 않고 누구도 파괴하지 않은 세계, 태곳적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곤’이라는 인물에 신비롭게 담아내며 ‘청소년소설’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독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첫 장편소설 『아가미』, 일상적 무감각에 치명적 독성을 주입하는 ‘구병모식 환상’의 결정판인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 이후 두 편의 청소년소설을 더 발표했던 구병모 작가가 새 장편소설 『파과』를 출간했다.



책을 펼치면 먼저 범상치 않은 여주인공과 만나게 된다. 겉모습은 평범한 60대 노부인이지만 실상은 그들의 언어로 ‘방역’이라 부르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여자, ‘조각(爪角)’. 그녀는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표적을 단숨에 처리하며 어느덧 업계의 대모의 위치에 이른 프로페셔널이다. 무정하고 냉혹하게 스스로를 단련해온 지난 세월 동안 그녀는 삶의 희로애락에 무감각했으며, 여성으로서의 행복 역시 남의 이야기로 치부했다. 그렇게 철저한 단절과 고독으로 유지되던 황량한 삶에 어느 순간 변화가 찾아왔다. 환갑을 넘긴 나이인 만큼 기억력이 떨어지고 몸이 삐걱거리는 건 예삿일인데, 느닷없이 ‘타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버려진 늙은 개를 데려다 키우고, 폐지 수집하는 노인의 리어카를 정리해주며, 의뢰인의 눈에서 슬픔과 공허를 읽어낸다. 또 방역 대상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해주고 자신의 정체를 눈감아준 ‘강 박사’에게 남다른 감정을 품게 되며 그들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따사롭게 응시한다. 그것은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자 서글픔이며, 그 속에서도 솟아나 온몸에 각인되는 살아 있음에 대한 생생한 감각이다.



비록 두꺼운 선글라스 너머에 자리한 슬픔의 심연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동공 대신 지지대를 잃은 반연식물의 정처 없음을 포착한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

이제 와서 타인의 눈 속에 둥지를 튼 공허를 발견하고 생겨나는 이 연민이라니, 살과 뼈에 대한 새삼스러운 이해라니. 노화와 쇠잔의 표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일관성 없음이라니. (176쪽)



잠깐이나마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이룬 살점과 핏방울과 뼛조각들을 잊고 긴장이 풀린 채 따뜻한 꿈을 꿀 뻔했던 순간을, 피비린내를 세척할 것만 같던 소독약과 스킨 섞인 독특한 냄새를, 한 폭 주단과도 같던 미소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마음속에 사리사리 얽히며 피어오른 것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접속했기 때문에 생겨난 작은 흥분에 불과하며, 거기 몸을 깊이 담그지 못하고 발만 살짝 적셨다가 돌아 나온 데서 비롯한 아쉬움의 반영일 뿐이다. (100~101쪽)





한국 소설에서 유례없는 캐릭터의 등장

상처투성이의 삶도 기꺼이 살아내리라는 의연한 발걸음




우리는 킬러가 등장하는 많은 영화와 소설을 알고 있다. 하지만 60대 현역 여성 킬러를 이토록 강렬하게 형상화한 작품은 유례가 없다. 작가는 노화와 쇠잔의 과정을 겪으며 새삼스레 마주하는 감정 앞에 당혹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작가의 깊고도 단단한 시선과 능수능란한 문장은 극한의 아픔을 감추고 자동기계처럼 살던 여인이 노년에 접어들어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에 맞닥뜨리게 되는 변화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뿐만 아니라 조각 주변의 인물들?강 박사, 투우, 무용, 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흡인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선사한다.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이나 ‘지켜야 할 것을 만드는 일’은 ‘방역업자’에게 신체적인 기능 저하 이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녀는 위험에 노출되었고, 육체와 심리, 양 갈래의 결함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녀가 어떻게 방역업계에 흘러들었는지, 방역 업계의 룰과 생리는 어떠한지, 과거가 어떻게 다시 비극적으로 재생되는지, 이 모든 이야기는 그녀의 현재로 수렴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킬러를 내세운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인가’ 하는 선입견을 단박에 깨뜨리고 더 넓은 문학의 지평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상하고 부서져 사라져가는’ 존재의 운명, 우리 삶의 피할 수 없는 이치에 대한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탐구이다.



거기 뭉크러져 죽이 되기 직전인 갈색의, 원래는 복숭아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건이 세 덩어리 보인다. 달콤하고 상쾌하며 부드러운 시절을 잊은 그 갈색 덩어리를 버리기 위해 그녀는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펼친다. 최고의 시절에 누군가의 입속을 가득 채웠어야 할, 그러지 못한, 지금은 시큼한 시취를 풍기는 덩어리에 손을 뻗는다. …… 그녀는 문득 콧속을 파고드는 시지근한 냄새를 맡으며 눈물을 흘린다. (222쪽)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332~333쪽 )



소설의 제목 ‘파과’의 의미는 첫 페이지를 펼치고 작품을 읽어나가는 동안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면 또 다른 의미와 이미지가 포개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으깨진 과일[破瓜]’은 ‘빛나는 시절[破瓜]’과 하나로 이어진다.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 그래서 우리는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네일아트를 받는 조각의 모습에 미소 지을 수 있다. 비록 단죄당했을지라도 그녀는 환하고 자유롭다. 상처투성이에 쇠락해가는 인생일지언정 기꺼이 살아내겠노라는 의연한 발걸음, 그것은 ‘지킬 것이 있다’는 열망이 가져다준 덤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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