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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온이퍼브
이태준 지음
2015-07-03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본문 중에서
“이렇게 살면 무엇하나! 몇 해를 가야 햇빛 한번 못 보는 시멘트 바닥에서 종을 치면 일하고 종치면 집에 오고 집에 와서는 저렇게 곯아떨어져 자고……또 내일도 모래도 일평생을……그런다고 돈이 뭐길래…….”
“참 세상은 아름답구나! 이렇게 좋은 봄날을 우리는 우리 것으로 누려보지 못하는구나! 풀 한 포기 없는 시멘트 바닥에서 윤전기나 돌리고……어디 새소리 한 마디 들을 수가 있나! 온종일 오장육부가 뒤흔들리는 모터 소리에 귀가 먹먹해 사는 것밖에…….”
박은 원망할 곳이 없는 듯이 보지도 않고 손으로 풀 한 묶음을 잡아 뜯었다.
풀을 눈앞에 가까이 대고 보니 그냥 풀인 줄 알았던 것이 좁쌀만 한 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그것을 본 박의 마음은 다감한 시인처럼 애달팠다.
호는 상허尙虛.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휘문고보 4학년 때 동맹 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1925년 도쿄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해 입선했다. 1927년 도쿄 조치대 예과를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구인회에 참가했으며,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1943년 절필 후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 작가 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 1946년 <해방 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하고 그해 여름에 월북했다. 6·25 전쟁 중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했다.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숙청당한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 전쟁 이전까지 《까마귀》《이태준 단편선집》《이태준 단편집》《해방 전후》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화관》《청춘 무성》《사상의 월야》 등 장편 13권을 출간했다.